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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환생R-16
이름: * http://빨갱이가 되었다


등록일: 2018-01-02 21:16 (104.236.53..***)
조회수: 1011 / 추천수: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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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닷새 후.

"...아직 이정도 시간 밖에 안 됐어? 아아, 진짜. 오늘 피곤한 일정이 많아서 잠을 좀 많이 자두고 일어나야 하는데."

나는 강렬한 햇빛과 사방에서 들리는 새들의 소리를 견디다 못해 일어나곤 이어서 투덜거렸다. 한번 완전히 깨버리면 쉽게 다시 잠들지 못하는 내 체질이 이때만큼은 그렇게 원망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일찍 일어났기에 머리로 다시 연습해볼 시간은 남아있다고 위로를 해야 하나, 쓸데없는 생각을 몇 하다 내가 일어난 것을 느낀 하인들이 내 방문 앞에서 나를 불렀다.

"이시리온 포 드 아르운 제4 황자 저하, 기침하셨는지요."
"어어, 일어났어. 모처럼 일찍 일어났으니 생각 좀 하고 있을 게. 혹여나 오늘 실수라도 하게 된다면 비단 나뿐만 아니라 전 황가에 누가 되니 조심조심히 해야지."
"예, 알겠습니다."

하인들이 대답하곤 각자 그들의 준비를 하러 멀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물론 그들은 생각한다는 것이 오늘 식에 대한 생각인 줄 알았겠지. 하지만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해서 잡다한 생각을 하려 한다는 내 의도를 알아챘다면 당장에 문짝을 뜯고 나에게 예복을 입히고 황제 앞에 데려갔을 것이다. 이제는 제법 그들과 익숙해져 장난을 치는 (비록 신분상의 차이 때문에 업무 이외의 것은 일방적인 관계 이상은 가지 못했지만) 것이 어색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그들은 갑자기 내가 반말도 쓰면서 친근하게 다가오려고 하는 모습이 낯설어 보였을 것이다. 이건 내 나름대로 생각해 보았던 것인데, 카루스타인 황자가 귀족들과 편을 만들 생각은 추호도 하지 말라고 그렇게 직접적으로 면전에서 경고할 정도면 알아서 잘 사려 귀족 사이에 내 세력을 만들 시도는 하지 않는 것이 여러 모로 그들도, 나도 짧은 생을 조금이라도 더 늘릴 수 있는 방안일 것이다. 그렇지만 정말로 황가 내에 아무 세력 없이 홀로 고립되게 된다면 차후 언제든지 단물이 빠지면 쳐낼 수 있는 껌딱지 신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때에는 황제가 되었을 카루스타인 1황자의 그 날 아침 기분에 따라 오들오들 떨며 살아야 하는, 황제의 동생 그 이상 그 이하에 지나지 않는 신세가 되는 것이 가히 확정적인 미래라고 할 수 있으니 최소한의 자기 방어를 쌓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나와 관련된 집무실의 인원들은 긴밀히 연결될 수 있게 장악하려 시도했다. 그것을 위해서 평소 결코 일적인 관계 이상으로 의미부여를 하지 않던 내가 그들에게 인간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처음이야 겉으로는 드러내지 못하지만 질색을 하면서 나와 한시라도 더 떨어져 있으려 했지만 자주 나와 마주칠 수밖에 없는 그들과 나의 신분상의 특징때문에 나를 점점 우호적으로 여기게 되었다. 당연히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고 율과 상의하면서 나온 계획이었지만. 아직까지는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 듯하다. 이걸 자신의 입으로 말하면 좀 민망할 수 있지만, 아무래도 나는 이들의 기준에서 미소년 상으로 있으니 시녀들은 내가 웃고 지나가거나 옷깃만 스쳐 지나가도 손쉽게 나와의 호감을 쌓았다. 당연히 이는 내가 독을 마시기 전 주위 사람들에게 냉소적으로만 반응할 뿐 딱히 해를 끼친 일이 없었기 때문에 쉬운 감도 있었다. 장하다, 과거의 나여. 이 기세로 주위 남자들의 우호도도 올릴 수 있게 도전 중이다. 율은 뭔가 사탕발림을 아무 어색함없이 날리는 내 모습에 뭔가 질려버린 표정이지만, 이게 제일 확실한 걸. 하하!

"황자 전하, 예복을 들고 왔습니다."
"열려 있는데. 들어 와도 돼."
"언감생심 전하의 침소에 들어가는 망극을 용서해주시옵소서."

하인들은 으레 하는 사무적인 말을 읊고는 빠르게 내 방에 들어와 내 주위에 둘러섰다. 나쁜 의미는 아니고 내 행색을 찬찬히 살펴보기 위해서였다. 어, 잠시만. 이거 그동안 맞춰 볼 때는 전혀 그런 기미가 보이지 않아 살짝 안심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오늘은 그동안 내 완강한 거부로 자신의 자리를 찾지 못했던 장신구들을 본격적으로 쓰려는 모양이다. 도대체가, 저 화려한 모양의 것들이 정말로 이제 막 12살이 될 아이가 입을 종류냐고!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나의 투덜거림은 이성의 제지로 가까스로 멈추었다. 찬찬히 생각해보니, 이전까지는 나와 관련해서 공식적인 큰 행사가 없었던 것도 있고 황실의 관심에서 밀려 있었다고 해도 좋은 그였기 때문에 그동안 그의 의복에 큰 간섭이 들어오지 않았던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내가 1황자에게 정식으로 합류하여 맞는 처음이자 가장 큰 행사이다보니 그들 입장에서는 나의 자존심을 세워 줄 필요성이 생겨 나를 챙겨주려는 것이 의복의 화려함으로 나타난 것이라고 판단을 내린 모양이다. 다만 그것을 입는 나의 처지로서는 그냥 다 됐고 춥지 않을 정도로만 입혀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으으음... 율, 어때. 꽤 많이 신경 써 준 것 같은데."
"저는 예식에 눈이 어두워 상세히 말하지는 못하지만, 감히 말씀드리자면 최대한의 성의를 드러낸 것 같습니다."
"그렇지? 그런데... 헉."

굳이 황궁이 나에게 보인 성의를 무시하여 이제 좋은 관계를 시작한 것을 틀어지게 할 마음은 없었기 대문에 무거운 옷과 장신구들로 치장한 후 가볍게 방 밖으로 발걸음을 옮긴 나는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황실은 '성의가 충분하다'라는 개념을 크게 생각하고 있었던 듯하다. 그들에게는 그런 저력이 있었다. 밖을 쳐다보고 창문을 통해 나의 눈에 들어오게 된 광경은 내가 그동안 봐왔던 것들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운집하여 준성인식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사람이 꽉차서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겠는데. 율, 식의 시작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아?"

율은 나의 질문에 꽤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고 알려주었다. 하루가 24시간 60분으로 나뉘어져 있는 것은 이곳에서도 똑같은 모양이다. 달 단위 이상으로 올라가면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그나저나 어쩐담, 이 꼴로 겁 없이 밖에 나가면 귀찮게 귀족들한테 둘러싸여서 제대로 하고 싶은 일도 못하고 1황자에게도 밉 보일테고. 한 눈에 보기에도 오백 명은 족히 모일 수 있는 광장이 발 디딜 틈 없이 꽉 차있다는 것은 그만큼 이번 식에 대해서 귀족의 관심이 크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평소에 중앙에 머무르는 귀족들의 수는 그렇게 많지 않아 저만큼 수가 차려면 결국 변방에 있는 귀족들이 들러야 한다는 말인데, 그 촉박한 시간 내에 저만큼 모였다는 것은 소식이 들리자마자 출발했다고 좋을 만큼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곧바로 식의 준비가 되고 있는 곳에 바로 가기에는 거기 가면 정신적으로 힘이 너무 많이 소모된단 말이야. 그렇다고 안에 가만히 머물러 있자니 심심하기만 해서 별 도움도 안되고, 어찌보면 밖으로 나가는 것보다 더 나쁜 선택이 될 가능성도 농후하단 말이야.

"음...지루하게 시간을 보내지 않으면서도 귀찮게 귀족들이 나를 건드리지 않을 만한 황실 내에서의 공간이라...아."
"좋은 생각이 나셨습니까?"
"엉, 기똥차게 좋은 생각이 나버렸네!"

나는 율의 물음에 웃음을 머금고 짧게 답을 하고는 발걸음을 좌측으로 틀었다. 당연히 내가 가려는 목적지로 가기 위한 동작의 일환이었고 뒤따르던 하인들은 잠시 당황한 듯하다가 예상치 못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능숙하게 내 움직임을 따라왔다. 물론 가는 길에 얼른 걸리적거리는 장신구들은 다 떼고 옷도 그나마 안 튀는 정도로만 갈아입었다. 식을 시작하면 도로 되입어야 하겠지만, 나는 일단 그 중무장을 하고 거기까지 걸어갈 정도로 정신이 나가지는 않아서 말이다.

"그래, 여기는 사람이 별로 없을 줄 알았지. 좋아, 여기서 당분간 몸을 사리고 있자. 괜히 남들 눈에 걸리면 힘들어지니까."

내가 망설임없이 도달한 곳은 바로 도서실이었다. 아무래도 소위 말하는 '머리 쓰는' 책들은 죄다 마탑에 진열되다 보니 자연스레 황궁에서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도서실을 찾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당연히 황궁에 남아있는 책들이 어디로 갔다던가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탑이 체계적으로, 그리고 최신 책들을 먼저 모으다보니 황궁에서도 예산을 책에 더 배당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마탑과 황궁의 사이가 나쁘기라도 한가? 그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황궁에서 운영하는 도서실에 남는 책들은 점점 통속적으로 변했다. 그래서 원칙적으로 황자가 될 사람이 도서실에 드나드는 것은 좋은 소리를 듣기 어렵긴 한데... 이게 뭐 나쁜 일도 아니고, 비판할 소리가 마땅히 없는 것도 사실이다. 어쨌든 오늘 같이 사람들이 몰려와서 발 디딜 곳 찾기 어려울 때면 중앙도서실부터 시작해서 온갖 곳이 꽉 차지만 지금 같이 식 전에 잠깐 동안은 하부도서실에서 사람들이 비는 시간이 분명히 존재하게 된다.

"좋아, 여기서 2시간 정도만 버티면 되겠다. 그때까지는 사람 걱정 안하고 돌아다녀도 되겠어."
"그런 것 치고는 사람이 꽤 있습니다만..."
"원래 사람들 취향은 다양한 법이야. 이 정도 변수는 예상 안에 있던 거지. 그것보다 도서실에 왔으면 조용히 해야지, 율. 기본 예절이잖아."

이 곳에서 가장 시끄럽게 말하고 있는 것은 나이긴 했다. 계급이 깡패지. 진지한 얼굴을 한 주제에 황당한 목소리를 낸 율에게 나는 더 이상 입을 열지 못하도록 주의를 주었다. 그런데 율의 말처럼 예상 범위보다 살짝 사람이 더 많기는 했다. 지금 유일하게 내 정체를 가려주는 이 모자를 잘못 벗었다가는 봉변을 당할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전에 말했던 그거... 율? 유-울? 허어, 나 보고는 말도 안하고 혼자 다니지 말라고 그렇게 신신당부하더니."

내가 율을 찾으려 고개를 돌린 시점에 율은 도서실에 오기만 하면 그랬던 것처럼 늘 그랬듯 어딘가로 사라져있었다. 사실 그래도 상관이 없는 게 황궁에 있는 모든 공공장소는 무기 패용이 금지되어있어 황자의 호위기사인 율도 검을 빼놓아야 하는 실정이고 특수한 도구로 이 곳 전체를 마법 금지 구역으로 지정해 놓은 탓에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다만 허무한 감은 좀 있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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