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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환생R-17
이름: * http://빨갱이가 되었다


등록일: 2018-02-16 16:24 (104.236.53..***)
조회수: 826 / 추천수: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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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 오랜만에 오니까 책들이 어디에 있는지 잘 기억이 안 나네. 아니, 애초에 저번에 읽었던 게 몇 편까지였지? 책 이름이 저게 맞나? 에이, 모르겠다. 일단 집어보고 아니면 빨리 다른 데를 찾아야지.'

"엣?"
"어엇."

나는 가물가물 날듯말듯 하는 기억을 탓하며 소설책을 눈 앞에 두고 고민하다가 일단 집어보자는 식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다 도중에 누군가의 손과 부딪혀 깜짝 놀라 내밀었던 손을 황급히 거두었다.

'그런데 어째 나는 소리가 좀 높았던 것 같은데. 아, 역시 어린애군.'

그런데 여자? 이러면 좀 얘기가 달라진다. 예전부터 나는 여자 어린애들을 다루는 데 곤란해왔다.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른다고 말해야 하나. 그나마 이곳에 들어올 만큼의 신분을 지닌 여자라면 최소한 어느 정도 교양을 갖춘 자일 것이다. 나는 거기에 희망을 걸기로 했다.

"다...당신!"
"어?"

하지만 나를 정면으로 바라보면서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이 이상해 재빨리 쓰고 있던 모자의 각도를 확인했지만 별 이상이 없는 것만 다시 확인하고 멍청히 그녀를 마주보았다. 아, 진짜. 왕실의 품격과 고풍스러운 예법은 다 어디로 팔아먹어진 거냐?

"당신 맞죠! 악질 장기 연체자!"
"어?"

나는 이어진 소녀의 말에 허탈하게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안심하고 정신을 가다듬는 도중에도 계속해서 그녀는 불평을 토해내고 있었다. 대충 정리해보자면, 내가 이전에 들고 간 책은 귀족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던 탓에 찾는 사람이 많았다. 이 소녀도 그 중에 한 명이었지만 변경 지방의 한계로 신간이 금방금방 들어오지 않아 애타게 보급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변경 지방에서 중앙으로 올라오면서 이 책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지만 어떤 악질 장기 연체자 때문에 이때까지 손만 빨면서 화를 삭여야 했던 것이다. 물론 그 악질 장기 연체자란 다름 아닌 나였다. 그렇다고 내가 어떤 잔인한 생각을 가지고 반납을 하지 않았다기 보다는 식의 준비가 맞물려 그 동안 갈 시간을 내지 못했다고 봐야 한다. 근데 사실 이 도서관의 최종적인 권한은 나한테 있는 거 아닌가?해서 반납이 밀려봤자 별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다. 반성하는 시간을 잠깐 가졌다. 아무리 봐도 내 잘못이기도 하고. 괜히 귀찮은 일이 생겨 황가 처음으로 대관식에 악의적장기도서미반납으로 식을 치르지 못하는 웃기지 않는 일이 현실이 될 위험을 느꼈기 때문은 아니다.

"좋아, 실수이긴 했지만 정말 미안해. 대신에 시끄럽게 안하면 안될까? 여기 마법차단 공간인 건 알고 있지? 차음 마법도 작동을 안 한다구."
"아니, 지금 그게 닷새 동안이나 밖에서 힘들게 기다린 숙녀한테 보일 태도인가요? 일단 그 거추장스러운 모자부터 벗고 정식으로 사과해도 모자랄 판에 무슨 말을 하는 지 모르겠네요!"

흐으으음, 잘 참았다. 끽해야 내 또래 근처로 밖에 보이지 않을 꼬맹이가 숙녀 운운하는 순간 웃음이 터질 뻔 했다. 침착하자.

"그래... 닷새 동안이나 기다렸, 아니 잠시만, 잠깐, 잠시. 밖에서 기다렸다고?"
"그래요! 얼마나 바쁘셔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쪽에 사시는 고귀한 황자님이 지난 며칠 동안 문을 열어주지 않으셔서 여기도 못 들어오고 멍청하게 기다리고만 있었네요! 그나마 여기가 사람이 없어서 재고가 있을 수도 있다길래 여기로 왔는데..."

아, 높으신 분들의 고충이란. 내가 의도해서 그런 건 아니었지만 그 때문에 아래 계층이 손해를 겪는 경우가 있다. 문제는 이것 때문에 나에게 불만을 호소할 때인데, 이게 나에게는 엄청난 고통을 준다. 별 건 아닌데 그저 내가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욕을 들어야 한다는 게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한 것이다. 다만 지금 같은 경우는 확실한 나의 잘못이 맞다. 더 이상 이야기가 커져서 황궁인력이 개입하는 일은 내가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이 '숙녀'가 원하는 대로 사과를 하든 뭘 하든 해야 겠다. 아아, 지방귀족의 딸에게 기가 눌려 사과하는 황자의 모습이라니. 여기가 그나마 나의 개인적 공간에 가까운 곳이기에 망정이지. 만약 조금이라도 상위층에게 열린 공간이었다면 나는 그들이 나를 알아보지 못하더라도 한동안은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 후, 기다리시게 만든 것에 대해서 사과를 드립니다. 부디 걸맞는 벌을 내려주십시오. 다만 귀족의 아량을 베풀어주셔서 이 무례함을 한 번 용서해 주신다면 그 행동이 귀감이 되어 만민을 감동시킬 것입니다. 됐지? 그럼 각자 자기 갈 길 찾아서... 표정이 왜 그래?"

저 소녀가 원하시는 대로 모자를 벗곤 고개를 숙였다. 그 다음 얼굴을 최대한 노출시키지 않기 위해 모자를 다시 쓰며 목을 내려 깐 채 말을 이어나갔다. 그런데 뭐가 또 문젠지, 입을 벌리고 나를 빤히 바라보고 있기에 말이 끊기게 되었다. 아아, 하긴 뭐가 어떻게 됐든 이 공간에 있는 이상 내 신분도 꽤 높을 거라고 추측이 될 텐데 이렇게 저자세로 나오는 거에 놀라서 그런 건가? 급한 입장이라서 어쩔 수 없었던 건데. 어... 설마 내 얼굴을 그새 알아보고 저러는 건 아니겠지?

"그...아...아무 것도 아니네요! 네, 그 정도면 충분한 것 같아요. 아니, 그, 오해는 하지 마시죠! 그 사과가 맘에 든 것도 아니고 태도도 솔직히 아직 불만족스럽지만 작은 일 치고 너무 크게 일이 일어난 것 같아서 이쯤에서 끝내주는 것이니까 저한테 고마워하세요."

당황했네. 사실 지나치게 예를 차린 게 이것을 유도하기 위함인 것이었다. 딱 이 또래의 소녀면 작은 일에 쉽게 흥분하는 대신에 큰 경험도 갑자기 당하게 될 경우에는 논리적인 판단을 단시간에 내리지 못하고 빨리 그 상황을 벗어나는 것에만 집중할 것이다. 이 나의 예상은 멋지게 들어맞은 듯하다.

"응, 그래, 잠깐이라도 만날 수 있어서 좋...았고, 이제 마주치지 말자. 안녕."

말해두자면 나는 떠먹여주는 기회를 놓칠 정도로 바보 같은 남자는 아니다. 소녀의 말이 떨어지자 마자 황급히 그녀와 멀어지려 했지만 그 다음 순간에 제지를 당했다.

"잠, 잠깐만요..."
"...거, 큰소리 내지 말자니까 끝까지 그러는 건 무슨 심보야. 그 새에 설마 잊어버렸나. 왜? 뭐가 문제야? 사과의 진실됨이 문제야?"

이 대목에서 나는 슬쩍 손가락의 모양을 굽혀 원 모양을 만들었다. 역시 만물의 이치는 돈이지.

"그게 아니라!.... 그냥..."
"그?"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이쯤되니 차라리 궁금해지기라도 한다. 도대체 뭣 때문에 각자 갈 길을 막고 이렇게 시간을 끌고 있는 것인가? 헌데 내가 말을 하면 할수록 그녀의 얼굴에 홍조가 짙게 띄어지는 것이 심상치 않다. 이거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건 아니겠지?

"그...아까 본의는 아니고 잠깐 봤는데, 이쪽 책들이 어떻게 놓여있는지 잘 아는 것 같아서..."
"같아서?"
"안내 좀 해줬으면..."

내가 전에 게임을 너무 인상 깊게 했었던 것 같다. 역시 내가 생각하던 것은 여지없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건 너무 갑자기 고난도 문제인데? 하긴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다-싶었다. 대충 눈에 보이는 대로 예상해보자. 먼저 이 소녀는 혼자 여기 있다. 그리고 변방에 있다가 오랜만에 왔다...그렇다면 부모님들은 모처럼 중앙에 모습을 보일 기회니 친교는 쌓아야겠고, 그렇다고 아끼는 딸은 공식적으로 내보이기 싫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적당히 사람도 없고 넘쳐나는 황궁의 재산이 보증하는 공식비무장지대인 황궁의 도서실은 아끼는 딸을 안심하고 두기에 적합한 장소일 것이다. 그러나 막상 친지와 떨어지게 된 딸 입장에서는 고독이 많이 쌓이게 된 것이다.
근데 그렇다고 내가 귀찮은 짐덩어리를 끌고 가야 할 이유가 생기나?

"..."
"...아, 진짜."

나는 무심코 시선을 정면으로 향했다가 나를 애달게 바라보는 눈길에 당황해서 눈초리를 아래로 내렸다. 이 황당한 아가씨는 얄궃게도 내가 누구에게도 관심을 받지 못하고 투명하게 살아가던 시절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당치도 않는 정말 황당하고 말도 안되는 생각이었지만, 인간의 감정이라는 게 어디 그렇게 이성적으로 다루어지는 일인가. 나는 항복할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 무슨 말인지 알겠으니까 그렇게 쳐다보지 말아줘. 사람들이 보면 누가 오해하겠다."

물론 도서실의 사람들은 그렇게 많지도 않았고, 있는 사람들도 우리에게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고 있었다. 애초에 오늘 같이 큰 행사에 여기에 있을 정도면 주위에 관심을 가질 성격이 아니기도 하다. 하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지금은 주변에 있는 어떤 일이라도 나와 연관될 수 있는 민감한 시기이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당초 도서실로 온 목적을 생각한다면 벌써 실패한 것 같기도 하다만.

"그래서 이 곳 같이 재미 없는 곳에 뭐가 그렇게 궁금한데?"
"...근데 왜 아까부터 반말이야?"

나는 잠시 당황하여 여자에게 맞추어 걷던 발걸음을 늦추었다. 이 여자는 정말 생각지도 않은 주제에서 나를 찔러오는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어.

"왜? 굳이 존대를 해야 할 이유라도 있어?"
"솔직히 말해서 달갑지는 않은 작위긴 한데 이래봬도 남작 작위 정도는 가지고 있는데. 너 같은 어린애가 반말을 자유롭게 할 정도는 아니지 않을까?"
'그거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확실히 내 나이 또래 정도의 아이가 작위를 가지고 있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아마 이 소녀의 아버지가 변경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어느 정도 갖추었기 때문에 아이에게도 일정한 위치를 둘 수 있었던 듯한데, 아직은 모르겠다.

"나도 사정이 있긴 한데... 알았어, 그럼 서로 존대 쓰기로 하자. 불만 없죠?"
"좋아요."

소녀가 약간 불만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본 성격이 책을 좋아하다보니 이런 것 가지고 시간을 오래 끌 생각이 없었나 보다. 나의 이 기사도정신을 어디에 비할 데 있을까. 결코 이 여인이 미인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그래도 세상만사 우울해보이더니 지금은 그런 생각은 안 하는 것 같아서 내 기분도 괜히 좋다.

"아, 이거다. 아까 찾던 그 책. 고마워요 소년. 이 쯤에서 헤어져도 될 것 같은데..."
"아가씨, 아시는 분입니까?"
"엥? 혼자 온 것 아니었어? 아는 사람이 있었나 보네? 근데 왜 굳이 나를..."
"아가씨, 아시는 분 맞습니까?"

이 기분 되게 오랜만이다. 내 위치를 받아들이고 난 후에는 이렇게 일방적으로 무시당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도대체 이 녀석은 무슨 자신감으로 사람을 없는 취급 하는 거야? 그 생각을 하면서 시선을 소녀 쪽으로 다시 옮겼는데 의외로 그 소녀의 표정도 좋아보이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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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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